[도서요약] 홍성건의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 - 의무의 종교에서 사랑의 동행으로 변화하기
오늘 아침, 당신은 어떤 속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까?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세차게 흔들리는 나침반 바늘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사방이 온통 모래뿐인 공간에서 바늘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요동치듯,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내면도 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밀려드는 일과와 수많은 선택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으면서도 정작 영혼의 바늘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라 서성입니다. "오늘도 내 힘으로 선하게 살아야지", "바르게 행동해야지" 하며 주먹을 꼭 쥐어 보지만, 하루가 저물 때쯤 마주하는 것은 영적인 풍요로움이 아니라 깊은 탈진과 허무함일 때가 많습니다.
수십 년간 사역의 현장에서 수많은 제자를 훈련하고 복음의 전선에서 깨달은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신앙은 결코 우리 자신의 의지나 도덕적 의무감으로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고독한 영웅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 순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에 나를 정렬하고, 그분의 부드러운 음성에 삶의 속도를 맞추어 가는 아름다운 동행의 여정입니다.
본 고는 제가 오랫동안 묵상하고 경험해 온 성령과의 동행, 즉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기록입니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세상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내면의 소음을 가라앉힌 채 주님과 한 걸음씩 걸어가는 영적 형성의 길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1. 내 노력이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들일수록 예외 없이 찾아오는 영적 침체기가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고, 말씀을 읽는데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니라 딱딱하게 굳어 버린 점토 같은 건조함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저 역시 사역의 연수가 쌓여갈수록 내 안에서 솟아나는 열정보다 의무감으로 버티는 순간들이 많아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율법적인 의무를 신앙의 전부로 착각합니다.
- "이것을 해야만 좋은 그리스도인이다."
- "저것을 하지 않아야 거룩한 사람이다."
이러한 규칙들이 영혼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성령의 생동감 넘치는 역사가 빠진 규칙은 결국 영혼을 옥죄는 창살이 되고 맙니다. 내 힘과 의지로 거룩해지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라는 것은 환경에 따라 너무나 쉽게 흔들리는 모래성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3)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를 향한 뼈아픈 질문이기도 합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는 그분의 은혜에 감격하여 성령의 충만함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내 경험과 노하우, 내 도덕적 의지로 신앙의 집을 지으려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육체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결국 '자기 의(Self-righteousness)'라는 교만이거나, 거듭된 실패로 인한 '절망' 둘 중 하나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막다른 길에서 손을 들고 내려놓기를 기다리십니다. 내 힘으로 하려는 의지를 꺾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그 자리가 바로, 진짜 영성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2. '행함' 이전에 '머무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속도'와 '효율'을 미덕으로 삼습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하고, 멀티태스킹을 잘해야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세상의 문법이 우리의 영적 생활에까지 그대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기도도 바쁘게 해치우고, 말씀도 숙제하듯 빠르게 읽어 내려갑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온유하고 세미한 바람과 같아서, 우리 마음이 분주하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는 그분의 음성을 알아채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행하기(Doing)' 전에 주님의 임재 앞에 '머무르는(Being)'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세상의 방식 (Doing) | 성령의 방식 (Being) |
| 빠른 속도와 효율성을 추구함 | 느림 속에서 영적인 깊이를 추구함 |
|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성과를 냄 |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열매를 맺음 |
|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안심함 | 주님의 임재 안에서 평안히 쉼을 누림 |
| 결과와 성취에 집중함 | 주님과 동행하는 과정 자체를 기뻐함 |
삶의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게으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삶의 주권을 주님께 온전히 이양하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가 앞서 달려가지 않고, 주님이 한 걸음 떼실 때 나도 한 걸음 떼겠다는 거룩한 기다림입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모든 스마트 기기를 끄고,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내려놓은 채 가만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머물러 보십시오. 내 안의 소음들이 잦아들 때, 비로소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속삭이시는 사랑의 음성과 세밀한 인도하심이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3.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영적 훈련: 읽기와 기록
조용히 머무르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그분의 음성을 분별하고 내면에 새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무질서하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언제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읽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말씀을 읽고, 그 말씀 속에서 찾아오는 성령의 세미한 감동을 기록하고 조직화하는 삶의 유익을 누려왔습니다. 단순히 성경을 지식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읽는 사색적 독서를 넘어, 내 영혼을 변화시키는 '영적 독서(Lectio Divina)'로 나아가야 합니다.
1) 천천히, 그리고 깊게 읽기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한 구절을 읽더라도 그 말씀이 내 영혼의 뼈대 속으로 스며들 때까지 반복해서 읽습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머물며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 오늘 나에게 하시는 부르심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터치를 기록하기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동, 찔림이 있다면 반드시 노트를 펼쳐 글로 적어두어야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감동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아서 일상의 분주함 속으로 금방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붓을 들어 종이에 적는 행위는 성령의 음성을 내 삶에 닻처럼 고정하는 거룩한 작업입니다.
3) 노트를 정리하고 조직화하기
주님이 주신 마음들을 날짜별, 혹은 주제별로 차분히 정리하다 보면 내 삶을 이끌어가시는 성령의 거대한 흐름(Flow)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주님이 지난달에 이 말씀을 주셨던 이유가 바로 오늘을 준비하기 위함이었구나" 하는 영적 안목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 정리된 영적 노트는 인생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강력한 이정표가 됩니다.
4. 매일의 선택, 순종이라는 일상의 예배
성령으로 행하는 삶의 진정한 시험대는 특별한 부흥회 자리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우리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을 대할 때, 직장에서 까다로운 동료와 마주했을 때, 물질을 사용하거나 운전을 할 때처럼 매 순간 마주하는 '작은 선택'의 기로에서 성령으로 행함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어떤 거대하고 드라마틱한 사역이나 기적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가장 위대한 기적은 우리의 인격이 변하고, 일상의 선택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여기서 '행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περιπατέω(페리파테오)*는 '주변을 걸어 다니다', '반복해서 산책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단 한 번의 위대한 도약이 아니라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걸음걸이를 의미합니다.
- 말 한마디의 선택: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날카로운 말 대신, 성령께서 주시는 온유하고 따뜻한 격려의 말을 선택하는 것.
- 감정의 선택: 내 안에서 솟구치는 분노와 서운함을 그대로 쏟아내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서서 "주님,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떤 마음을 품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 것.
- 태도의 선택: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이라도 주님께 하듯 정성을 다해 하나씩 차분하게 처리해 나가는 것.
이렇듯 일상의 현장에서 성령의 음성에 겨우 한 걸음 순종하는 작은 행동들이 쌓여, 우리의 견고한 영적 성품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삶으로 드리는 진짜 예배입니다.
5. 의무의 종교에서 사랑의 동행으로
참된 제자도는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헐떡이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너무나 무겁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면, 그것은 성령의 법이 아니라 여전히 육체의 법으로 주님을 섬기려 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의무감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사랑' 때문에 움직입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행복한 것처럼, 성령과의 동행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내 권리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자발적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것은 억지로 쥐어짜 내는 순종이 아니라, 내 안에 생수의 강이 넘쳐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순종입니다.
우리가 삶의 속도를 늦추고 온전히 성령의 임재에 정렬될 때, 비로소 우리의 시선은 세상의 긍정적인 면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아름다운 일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일하시고 계시는 주님의 손길이 보이기 시작하며, 우리 입술에서는 불평 대신 감사의 고백이, 차가운 비판 대신 영혼을 살리는 따뜻한 격려의 언어가 흘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에 돛을 올리며
이제 혼자만의 힘겨운 노 저기를 멈추십시오. 내 의지와 지혜로 인생의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가려 하니 늘 지치고 고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팔뚝 힘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서 불어오고 계시는 성령의 바람에 영혼의 돛을 높이 올리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거창한 계획으로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한 번에 하나씩, 주님이 허락하신 영혼의 호흡을 음미하며 걸어가 보시기를 권합니다. 말씀을 펼쳐 그 속에 담긴 주님의 심장을 깊이 묵상하고, 떠오르는 감동을 노트에 정성스레 적어내려 가며, 마주하는 이들에게 따스한 사랑의 눈빛을 건네는 것. 그 작고 소박한 걸음들이 모여 당신의 삶을 거룩한 영성으로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천천히, 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주님과 발맞추어 걷는 행복한 동행이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 한복판에서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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