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요약] 제프 밴더스텔트의 『예수 포화 (Gospel Saturation)』 - 느리지만 신실하게

[도서요약] 제프 밴더스텔트의 『예수 포화 (Gospel Saturation)』 - 느리지만 신실하게



프롤로그: 월요일 아침의 성도들은 어디로 가는가


주일 밤 11시, 모든 사역을 마친 뒤 예배당의 불을 끄고 차에 올라탔을 때, 계기판의 거친 엔진 소리 사이로 기어이 비집고 들어오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열심히 교회의 프로그램을 가동하는데, 성도들의 월요일은 왜 단 한 걸음도 변화하지 않는가?"


지난 수십 년간 사역의 현장에서, 그리고 수많은 소그룹 리더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저를 가장 깊은 무력감에 빠뜨렸던 것은 바로 이 거대한 괴리감이었습니다. 주일 아침의 예배당은 뜨겁습니다.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고, 설교 말씀에 간절한 목소리로 "아멘"을 외치며, 세상을 뒤엎을 것 같은 기세로 통성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일터로 출근하는 성도들의 뒷모습에서는 주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거친 생존 경쟁 속에서 불안해하고, 직장 상사의 한마디에 영혼이 흔들리며, 가정에서는 사소한 일로 쉽게 분노합니다. 주일의 거룩함과 월요일의 세속성이 마치 기름과 물처럼 전혀 섞이지 않은 채 공존하는 이 기이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처음에 저는 이 문제가 '훈련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정교한 제자 훈련 코스를 개설했고, 더 매력적인 은사 배치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성도들을 교회 건물 안으로 모으기 위한 체계적인 조직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해져 봅시다. 교회의 사역 프로그램이 늘어날수록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의 종교적 의무에 지쳐갔고, 정작 세상이라는 진짜 선교지에서 복음으로 살아낼 영적 에너지는 완벽하게 고갈되어 갔습니다. 우리는 성도를 예수의 제자로 키운 것이 아니라, 교회의 행사를 매끄럽게 굴리는 '교회 프로그램의 전문가'로 길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예수 포화(Gospel Saturation)’는 결코 교회의 주간 스케줄러에 또 하나의 매력적인 사역을 추가하자는 제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사역의 패러다임 전체를 밑바닥부터 뒤흔드는 근본적인 전환입니다. 성도들의 삶 전체가, 그들이 숨 쉬고 움직이는 모든 일상의 리듬이 복음으로 흠뻑 젖어 드는 영적 포화 상태를 이루는 것, 그리하여 일주일 중 겨우 한두 시간의 종교적 행위에 머무는 신앙을 삶 전체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실천적 교회론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장. 사역의 함정, ‘프로그램화된 교회’의 임계점


1. 분주함이라는 가짜 영성

언제부터인가 현대 교회는 '바쁜 교회'가 곧 '좋은 교회'라는 암묵적인 공식에 지배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교회 주차장은 쉴 틈이 없고, 교육관마다 불이 켜져 있으며, 매달 새로운 세미나와 집회가 열려야 비로소 교회가 살아있다고 안도합니다. 목회자들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느라 탈진하고, 평신도 리더들은 여러 부서의 봉사를 전전하며 영적 영양실조에 걸립니다.

이러한 분주함은 치명적인 가짜 영성을 만들어냅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교회의 행사에 자주 참여하고, 많은 시간을 교회 건물 안에서 보낸다는 사실 자체로 자신의 영적 상태가 건강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취제와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분주한 활동이 세상 속에서 복음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영적 죄책감을 교묘하게 가려주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의 또 다른 역할이나 직분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서 복음의 사람으로 버텨낼 수 있는 뼈대 있는 영적 체력입니다.


2. 화학적 개념으로 바라본 ‘포화(Saturation)’의 신학

그렇다면 제가 말하는 '포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던 화학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용액에 소금이나 설탕 같은 용질을 계속해서 넣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녹지 않고 바닥에 가라앉기 시작하는 임계점에 도달합니다. 이를 '포화 상태'라고 부릅니다. 포화 상태가 된 용액은 그 안의 모든 물분자가 용질과 완벽하게 결합하여, 외부에서 다른 물질이 들어와도 자신 고유의 성질을 잃지 않는 강력한 결합력을 지닙니다.

예수 포화 역시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리 삶이라는 용액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은혜가 끊임없이 녹아들어, 우리의 생각과 언어, 관계와 재정,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가장 사소한 가사 노동에 이르기까지 복음이 완벽하게 결합한 상태를 뜻합니다. 이렇게 복음으로 포화된 그리스도인은 일터나 학교라는 세상의 용액 속에 던져져도 결코 동화되거나 오염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복음의 맛으로 변화시키는 거룩한 전염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3. 모이는 구조에서 흩어지는 구조로의 전면적 전향

성경이 말하는 교회(Ekklesia)는 본질적으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인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의 흩어짐'입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는 오직 '모이는 구조(Centripetal Structure)'에만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가, 얼마나 웅장한 예배당을 지었는가, 얼마나 세련된 시스템을 갖추었는가가 성공의 지표가 됩니다.

반면 예수 포화를 지향하는 교회는 '흩어지는 구조(Centrifugal Structure)'를 사역의 핵심 동력으로 삼습니다. 주일의 모임은 세상으로 흩어지기 위한 거룩한 충전소이며, 성도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삶의 현장이야말로 진짜 승부처가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우리는 성도들을 교회 안에 묶어두는 사역자가 아니라, 그들이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대리자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파송하는 영적 사령관이 되어야 합니다.



2장. 복음의 리듬,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꾸는 일상의 재발견


1. 우리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리듬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리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리듬은 대단히 일상적이고 반복적입니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음식을 섭취해야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며,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또한 타인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며, 삶의 기쁜 순간을 축하하기도 합니다.

선교적 삶이란 이 일상의 리듬을 깨뜨리고 무언가 대단하고 거룩한 종교적 이벤트를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인 일상의 리듬 속에 복음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일하고, 쉬고, 대화하는 모든 일상의 모멘텀이야말로 복음이 육화(Incarnation)되어야 할 가장 확실하고 구체적인 선교지입니다.


2. 식탁(Eat): 하나님의 환대를 맛보는 성소

예수님의 공생애 복음서 기록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중요한 고비마다 늘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향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며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식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용납, 그리고 파격적인 은혜가 베풀어지는 가장 거룩한 선교적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식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철저히 계산된 관계 속에서만 식사하거나, TV 화면을 바라보며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곤 합니다. 일상의 포화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식탁의 리듬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소그룹 안에 격식 없는 식탁을 열고, 외롭고 상처받은 이웃들을 초대해 보십시오. 값비싼 산해진미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서로의 숟가락 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재 자체를 기뻐해 주는 환대의 식탁 속에서 사람들은 교리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하나님의 생생한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일(Work): 창조적 소명의 거룩한 캔버스

많은 성도가 직장 생활을 영적 전쟁터로만 규정하거나, 혹은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버텨내야 하는 고단한 세속의 영역으로 치부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세상의 논리에 따라 살고, 주일에 비로소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는 영적 이원론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일터를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소명의 자리로 완벽하게 재정립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그것을 맡기시며 "경작하고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제품을 생산하고, 친절하게 고객을 응대하며, 공정하게 문서를 처리하고, 탁월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노동의 과정은 하나님의 성품과 다스림을 세상에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일터는 전도를 위해 잠깐 리플릿을 돌리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캔버스입니다.


4. 휴식(Rest): 행위 구원을 거부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 전쟁

쉼이 거세된 현대 사회는 인간의 가치를 오직 '생산성'과 '효율성'으로만 평가합니다. 사람들은 뒤처질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에 잠을 줄이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질주합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올바르게 쉴 줄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력한 대조 사회적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휴식은 단순히 다음 노동을 위한 에너지 충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일하지 않고 멈추어 있는 이 순간에도,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시며 내 삶을 붙들고 계신다"는 철저한 신앙고백입니다. 나의 어떠함이나 행위가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존재 가치가 완벽하게 확증되었음을 믿기에 우리는 안심하고 멈출 수 있습니다. 불안에 떠는 세상 한가운데서 평안히 안식하는 성도의 모습은, 행위 구원에 목말라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은혜의 복음을 웅변하는 가장 아름다운 통로가 됩니다.



3장. 존재의 회복, 성도의 영혼에 새겨진 세 가지 DNA


1. 정체성이 기능을 결정한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다닐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기능적인 질문에 먼저 집중합니다. 찬양대 봉사를 해야 할지, 주차 안내를 해야 할지, 교사를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행함(Doing)'보다 '존재(Being)'를 앞세웁니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올바른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채 행하는 모든 사역은 결국 자기 의를 쌓거나 타인을 정죄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성도의 내면에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세 가지 본질적인 영적 DNA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필요에 따라 동원되는 기능적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의하신 존재론적 정체성을 세상 속에서 살아내는 자들입니다. 그 세 가지 정체성은 바로 '가족, 종, 선교사'입니다.


2. 첫 번째 DNA - 하나님의 ‘가족’ (Family)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 우리에게는 거대한 영적 가족 관계가 형성됩니다. 내 곁에 앉아 있는 성도는 단순히 같은 종교적 취향을 가진 회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나의 진짜 형제요 자매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군대식 조직이나 기업형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족은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연약하다고 해서 가족 밖으로 내쫓지 않는 것처럼, 참된 교회 공동체는 서로의 허물과 약점을 기꺼이 담당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며, 아무런 조건 없이 용납하는 사랑의 관계망이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기능이 아닌 존재로, 진짜 가족으로 대하기 시작할 때, 관계의 단절과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신음하는 세상 사람들은 이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영적인 집'을 발견하고 따뜻한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3. 두 번째 DNA - 예수 그리스도의 ‘종’ (Servant)

현대 문화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네가 주인이 되어 너의 권리를 주장하고,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 타인을 지배하라"고 부추깁니다. 상향성(Upward Mobility)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포화를 경험한 성도의 삶의 방향은 철저히 하향성(Downward Mobility)을 지향합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타인을 섬기는 종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종의 정체성을 자각한 그리스도인은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권리 주장을 내려놓습니다. 남들이 꺼리는 궂은일을 묵묵히 도맡아 하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보복하기보다 축복하며,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흘려보내어 주변 사람들의 결핍을 채워줍니다. 이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종의 삶이야말로, 이기주의와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며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곳에 임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4. 세 번째 DNA - 세상으로 보냄 받은 ‘선교사’ (Missionary)

"선교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개 특정한 신학 훈련을 수료하고 언어 장벽을 넘어가 해외 오지에서 사역하는 소수의 헌신자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파송 명령에서 제외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성도는 예외 없이 보냄 받은 선교사입니다.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가는 놀이터, 이웃과 담소를 나누는 동네 카페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파송하신 선교지입니다.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주변 사람들을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영적으로 책임지고 섬겨야 할 복음의 대상자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의 아픔과 기도 제목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의 소망을 전할 기회를 선포하게 됩니다. 우리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이미 파송된 자리 위에 서 있습니다.



4장. 삶의 모든 자리를 복음의 영토로 일구는 구체적 실천 로드맵


1단계: 현재 내 삶의 168시간 성찰하기

사역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은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삶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주일에 168시간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일주일 동안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가감 없이 기록해 보십시오.


요일오전 (06:00~12:00)오후 (12:00~18:00)저녁 (18:00~24:00)복음적 재해석 및 적용 포인트
출근 및 업무 집중팀 미팅 및 행정 처리가족 식사 및 휴식일터에서의 종 정체성 구현, 정직한 업무
출근 및 고객 응대프로젝트 기획동료와의 가벼운 차 한잔동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선교사적 접근
출근 및 업무 집중팀원 피드백 세션소그룹 모임 (식사)소그룹 멤버들과의 가족 정체성 확인
출근 및 업무 집중외근 및 파트너사 미팅개인 운동 및 취미건강 관리를 통한 창조 성품 유지
출근 및 마감 작업주간 업무 보고이웃 부부 초대 저녁 식사식탁의 리듬을 통한 하나님의 환대 실천
집안 청소 및 정리자녀와 함께하는 시간부부 대화 및 안식 준비가정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는 가족 DNA
공동체 연합 예배소그룹 리더 디브리핑온전한 휴식 및 묵상예배를 통한 영적 충전과 월요일 파송 준비

우리는 선교적 삶을 살기 위해 없는 시간을 쥐어짜 내어 새로운 스케줄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내 삶에 존재하는 출퇴근 시간, 점심 식사 시간, 가사 노동의 시간들을 복음의 렌즈로 재해석하고, 그 평범한 모멘텀 속에 어떻게 '가족, 종, 선교사'의 정체성을 녹여낼지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진짜 변화는 시작됩니다.


2단계: 소그룹의 체질을 내부 지향에서 외부 지향으로 개선하기

기존 교회의 소그룹(구역, 순, 목장 등)은 대부분 내부적인 교제와 영적 안락함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모여서 찬송하고, 성경 공부 교재의 빈칸을 채우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눈 뒤 차를 마시고 헤어집니다. 이러한 소그룹은 영적인 온실과 같아서, 온실 밖의 세상 영혼들을 품을 수 있는 자생력이 없습니다.

이제 소그룹의 목적과 체질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모임의 자리에서 성경 지식을 쌓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이번 주에 우리 소그룹이 함께 찾아가 섬길 수 있는 우리 동네의 소외된 이웃은 누구인가?", "내 직장 동료 중 낙심해 있는 그 사람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환대할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소그룹의 시선이 내부에서 외부를 향해 열릴 때, 소그룹은 비로소 교회의 하위 조직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강력한 선교적 공동체(Missional Community)로 거듭나게 됩니다.


3단계: 의도적이고 정기적인 식탁 공동체 운영하기

예수 포화의 사역에서 가장 쉽고도 강력한 실천은 바로 '식탁'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좋으니, 의도적으로 날짜를 정해 여러분의 집 문을 활짝 열어보십시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믿지 않는 이웃, 관계가 서먹했던 직장 동료, 혹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위로가 필요한 친구들을 초대하십시오.

이 식탁의 자리에서 절대 조급하게 전도 영접 기도문을 들이밀거나 신앙적 설교를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환대가 아니라 강요입니다. 그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고, 그들의 깨어진 삶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들의 존재 자체를 기뻐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서로를 사랑하고 환대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불신자들은 "아, 이곳에는 세상과 다른 무언가가 있구나"라는 영적 호기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식탁은 복음의 변증이 일어나는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평화의 영토입니다.


4단계: 관계적 신뢰 위에 삶과 말로 복음 선포하기

일상의 리듬을 함께 공유하고 식탁을 통해 두터운 관계적 신뢰가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상대방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아픔이나 인생의 결핍, 두려움을 스스로 털어놓는 영적 골든타임이 찾아옵니다. 질병의 고통, 자녀 문제로 인한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을 고백할 때가 바로 우리가 가진 복음의 소망을 아낌없이 들려줄 기회입니다.

이때 우리는 박제된 교리가 아니라, 내 삶의 전 영역을 통치하시는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해야 합니다. "내 삶도 너처럼 심하게 깨어지고 불안했었어. 하지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은혜를 만났을 때, 그분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주셨을 때 내 안에 이런 평안과 회복이 시작되었단다." 삶으로 먼저 보여주고, 그 위에 따뜻한 언어로 얹어지는 복음의 선포는 듣는 이의 영혼의 빗장을 열고 성령께서 일하시는 강력한 구원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에필로그: 느리지만 신실하게, 은혜의 물결을 향하여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매일의 고단한 일상을 버텨내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위대함은 일요일 아침 예배당 건물의 크기나 주차장에 가득 찬 차량의 숫자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참된 교회의 위대함은 주일 예배가 끝나고 성도들이 예배당 문을 나서서 각자의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바로 그 삶의 현장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사역을 더 확장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프로그램의 분주함으로 자신과 성도들을 들볶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 서십시오. 대신,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평범한 일상의 공간과 관계들을 찬찬히 돌아봅시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처리하며 모니터를 바라볼 때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피곤한 몸을 기대고 있을 때도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서 계심을 신뢰하십시오.

단번에 세상을 바꾸려는 영웅주의를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일상의 리듬을 복음으로 하나씩 하나씩 포화시켜 나가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느리지만 신실하게 내 삶의 자리를 복음의 영토로 일구어 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온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득 채우시는 위대한 부흥의 역사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복음의 포화 상태를 향해,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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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포화:우리의 일상이 예수로 가득 찰 때까지, 토기장이, 제프 밴더스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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